누군가 나에게 삶을 요약하라고 한다면 아마 나는 ( <span class="struggle-link">[[투쟁]]</span> / <span class="proof-link">[[증명]]</span> )을 고르겠지.(link-reveal:"//비싸게 굴 것 없잖아. 조금만 더 사근사근하게 굴어봐. 너도 그게 편할 걸.//")[ 그러니까 이런 말 앞에서 바라는 대로 웃어주는 대신에 귀를 물어뜯어버리기로 결정한 순간 삶의 방향성 한 축이 고정된 거다. 주디스 오트베리는 그 사실을 혼자 흥분해서 벌개진 귓바퀴를 눈 앞에 두고서 입을 쩍 벌린 순간에도 냉정하게 알았고 저지른 뒤에도 후회하지 않았다. 깔보고 후려치고 깎아내리는 모든 취급과 시도를 대놓고 걷어차고 하나씩 빈정대고 면전에서 짓뭉개면서 사는 삶은 이젠 이름도 까먹은 그 등신의 말마따나 편하지는 않았지만 … 오기는 정말이지 뒤지게 강력한 동기라니까. 별 미친 사람과 괴짜, 또라이, 마녀 소리를 들어도 우습게 보이는 것보단 나았고, 라인 잘 탄 동기보다 대놓고 진급이 밀려도 부정 못할 실력의 증거들을 보여주면 (link-reveal:"그만이라고 생각했다.")[ 2010년의 커데트 채플 전쟁은 그런 점에서 중요했다. 참전조차 자신을 소령까지 밀어주진 못했다. 편대원을 위해 옆구리를 지져먹고도 그 흔한 에어 메달조차 없이 퍼플 하트만으로 퉁치고 넘어갈 만큼 사령부가 뻔뻔할 줄도 몰랐고, 복직하면서 배속된 머나먼 알래스카 엘멘도르프 기지엔 소문만 주워 듣고 호기심에 기웃대는 사람들만 한 트럭이었다. 다들 한번 병상에 고꾸라진 경험이 이 유명한 트러블 메이커의 기를 어떻게 꺾어놨는지 알고 싶어 (link-reveal:"안달난 것처럼 굴었다.")[ 다시 말해 주디스 오트베리에게는 반드시 이 모의전에서 화려하게 복귀하고, 스스로가 세운 목표를 달성하고, 자신의 부진을 기대한 모든 얼간이들에게 엿을 먹이면서 인생의 하이라이트로 만들어야 할 … [[이유와 오기가 전부 있었다는 뜻이다.->투쟁2]]]]](link-reveal:"//당신하고 결혼한 걸 후회해. 당신을 믿기로 한 것만큼 멍청한 결정은 없었어.//")[ 그러니까 노바가 나를 밀치고 나가면서 말했던 순간 제 인생은 낙제점을 받은 것이나 다름 없다. 그 폭언 앞에서 스스로도 깜짝 놀랄만큼 반사반응처럼 치밀어 오르던 폭력성을 가누고 삭히느라 붙잡을 타이밍도 놓쳤다. 다 지난 다음에 텅 빈 자리를 아무리 돌아봐도 한 번 허물어진 모래성을 다시 쌓을 방법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게 발 밑에서 쉽게 쓸려나가고 있었다. 첫 파도에는 헤이즐이, 그 다음에는 노바가. 한 때는 완벽하게 완성한 줄 알았던 그 모든 삶이 (link-reveal:"금세 흔적도 없다는 게.")[ (link-reveal:"어떻게 그럴 수 있지?")[ 괜찮을 땐 모든 게 완벽한 것처럼 보였다. 밴드 공연에서 운명처럼 만난 낭만적이고 특별한 파트너는 목에 매달려 입 맞추면서 청혼을 받아들여줬고, 술자리 우스갯소리 정도나 될 수 있는 얼빠진 일화와 함께 시작한 커리어는 사람 좋은 선후배, 동기들과 함께 막힘 없이 쭉쭉 뻗어나가고 있었다. 헤이즐의 임신 소식조차 준비된 타이밍에 선물처럼 찾아왔다. 그래서 이제껏 조던은 그 모든 걸 어떤 확인도장처럼 느끼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삶을 제대로 잘 살고 있고 주어진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뭐랄까, 하늘·신·절대자 … 위로부터의 증명. 그러나 보라. 지금 와서 명백해진 것은 하나 뿐이다. 자신은 성공에 처할 줄은 알아도 (link-reveal:"실패를 견딜 줄은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 유성우는 핑계 삼기 좋은 허울이다. [[조던 오트베리의 증명은 진작부터 붕괴하고 있었다. ->증명2]]]]]]//(link-reveal:"이어컷. 직전 모의 비행에서 갑자기 진로 변경한 이유가 뭐지?")[ (link-reveal:"그 편이 빨랐을 테니까요. 실제로 기록도 단축되지 않았습니까?")[ (link-reveal:"비행 중 그렇게 판단한 근거는?")[ (link-reveal:"제 판단이 글렀다는 지적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소령님?")[ [[그러면 그냥 본론으로 들어가셔도 되는데요.->투쟁3]]]]]]//[[인정한다. 솔직히 초조해서 날서 있기도 했다.->투쟁4]] //(link-reveal:"대위,")[ (link-reveal:"내 조종사가 어떻게 날지")[ [[적어도 난 알아야 한다는 말을 하는 거다.->투쟁5]]]]//그때 당신도 뭐, 상냥하고 사근사근한 타입은 아니긴 했어. 후임이 빈정대며 들이받으니 대번 찡그려지던 눈썹에서 고지식하고 만만찮은 성격이 참 뻔히 보였었는데. 근데 적어도 열받아서 퍼뜩 고개 들고 마주 본 시리게 파란 눈이 나를 문제아, 말썽거리, 감정적인 여자가 아니라 조종사로 보고 있다는 것 하나는 예민하게 굴던 와중에도 알아볼 수 있었다. (link-reveal:"그게 뭐라고, 마음이 녹아서.")[ 당신은 내가 '제대로' 날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했고 지켰다. 그건, 그건 꼭 우승한 경기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결과가 중요한 시기의 경쟁이었는데, 연습하는 과정에서 한계 없이 자유에 취한 것처럼 날다 착륙하면 설령 장담처럼 (link-reveal:"우승하지 못해도 상관 없을 것 같다는 착각을 하게 됐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거고 우승했을 땐 … … [[비교도 안 되게 좋았지.->투쟁6]]]](link-reveal:"고백 하나")[ 당신이 조금의 마음도 없이 오로지 충동에 휩쓸려 원나잇을 하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라는 (link-reveal:"것쯤은")[ [[처음부터 알았다.->투쟁7]]]]헬멧을 집어던지고 무수한 동기들 보는 앞에서 입을 맞추는데도 밀어내기는 커녕 단단히 받쳐 끌어안던 팔뚝에서, 여운을 못 감추고 탈의실 앞에서 잡아당겼을 때 못 이긴 척 끌려오던 걸음에서, 무슨 이십대 애들처럼 락커룸에서 붙어먹고 끌어안은 채 숨 고르던 중에 달싹거리다 마는 입술에서, 얼어붙은 호수 밑에 불을 삼킨 채 바라보던 눈길에서. 이 다음에 대한 기대를 (link-reveal:"여러 번 읽었는데.")[ 나는 가끔 우리가 서로 거기에 있는 걸 분명히 알면서도 침묵하며 모른 체 하던 마음을 실수처럼 엎지르고 싶었고 동시에 손 닿지 않는 곳으로 도망치고도 싶었다. 설레임은 그렇다치고 두려움은 어디서부터 왔는지, 그때의 나는 정확한 정체도 모른 채로 가끔 소스라치게 (link-reveal:"어깨를 떨었었다.")[ [[이젠 안다.->투쟁8]]]]//(link-reveal:"레일리. 있어요? … 들어가도 됩니까.")[ [[… … 들어와.->증명3]]]//(link-reveal:"옳은 길 대신 쉬운 길을 고르는 건 습관이다.")[ 조종사가 얻는 콜사인에는 어쩌면 자기예언적 성격이 있는지도 모른다. 지름길인 줄 알고 틀린 길을 날았던 조종사 학교의 어느 얼간이는 자신의 과오를 반성할 줄 모르고 반복한다. 깨진 부부관계를 직시하면서 노바가 보낼 이혼장을 빈 집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는 대신 눈을 돌렸다. 더 묻지도 자신을 질책하지도 않고, 웅크리면 뒷목과 등 언저리를 가만히 쓸어주던 마른 품에 어리광처럼 고개를 파묻으면 거짓말처럼 틀어막혔던 숨이 쉬어졌다. 자신과 타인에게 모두 도덕 기준이 높았던 당신이 마주 끌어안을 때마다 가슴팍에 인식표와 함께 차갑게 뭉개지던 반지를 어떻게 견디고 있을지 같은 건 그 당시엔 생각도 안 해봤다. 오로지 중요한 건 자신의 실패와 고통을 모른 척 외면하다 마침내 [[깜빡 잊어버리는 것 뿐이었다.->증명4]]]//[[특별한 이유도 있지. 자네와 함께 살까 싶은데.->투쟁9]]//[[당신 눈이 나를 무르게 만든다. ->투쟁10]](link-reveal:"At ease!")[ 멀리서 편대장이 모인 편대원들에게 외치는 구령이 주변음처럼 들렸다. 주디스는 덩달아 느슨하게 어깨를 늘어트리고 말았다. 바늘 하나 안 들어갈 것처럼 꼿꼿했던 원칙주의자의 모습은 다 어디로 가고, 살면서 권위나 자존심 같은 건 세워본 적도 없는 사람처럼 부드럽고 다정한 눈을 하고서. 나한테 어떻게 살고 싶느냐고. 순식간에 평생 한 몸처럼 날 세우고 살았던 뾰족한 가시들이 여름날의 눈사람처럼 모조리 녹아 허물어지는 기분이 든다. 열네 해 전이라면, 아직도 나의 삶과 투쟁이 지난한데 내가 먼저 뭉툭해질 게 (link-reveal:"가장 겁났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그걸 겁낼 필요가 있나?->투쟁11]]]](link-reveal:"주디스는 아주 새삼스럽게 자신이 뾰족하게 꿰뚫어 지나온 궤적을 돌아본다.")[ 넘을 수 없는 벽이자 영원한 장애물 같았던 바위들은 쪼개지고 갈라져 알아서 늙어 은퇴한지 오래다. 당장 다음달에는 대령 진급이 예정되어 있고, 준장 역시 아주 먼 꿈은 아닐 수 있겠다 싶다. 버틴 건 자신의 공이지만 오로지 그것만으로 다다른 자리는 아니었다. 한참 밀렸던 진급이 제대로 된 트랙에 돌아왔을 때 앞장선 준이 막힌 길을 열어주려고 알게 모르게 손 써주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애초에 다이애나 아니었으면 꼬리에 적기를 매단 채로 비상탈출하는 모험에서 살아돌아오는 것부터 어려웠을 테고. 더러운 성질로 제멋대로 살아온 것 같은데 정작 그런 제 모습을 롤모델처럼 선망해주는 후배들도 시간 지나니 여럿 생겼다. (link-reveal:"그리고 …")[ (link-reveal:"당신도 있었지.")[ 질문은 지금 받았는데 주디스는 자신이 어쩌면 이 답을 진작에 찾았다는 일종의 기시감을 느낀다. 아주 별거 아닌 순간에, 그러니까 예컨대 뒤척이다 깬 당신이 나를 깨울까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단단한 팔로 허리를 슬그머니 감아안던 때나, 어느 아침에 당연한 것처럼 나를 위해 스크램블 에그를 만들면서 이보다 더 열중할 수 없을 것처럼 몰두한 뒷모습을 발견했을 [[찰나처럼.->투쟁12]]]]]//(link-reveal:"내 대답 이미 알고 묻는 거 아니에요? 레일리.")[ (link-reveal:"어떻게 살고 싶냐니,")[ [[그야. 당연히……,->대답]]]]//[[당신과 함께 살고 싶어.->삶]] //(link-reveal:"눈 감아봐요. 레일리.")[ (link-reveal:"잠깐 … 잊어버리는 거에요. ")[ [[그러면 모든 게 좀 더 쉬워질 테니까.->증명5]]]]//[[그러니까 그딴 말을 해답이랍시고 당신에게 권할 수도 있었던 거고.->증명6]]//(link-reveal:"왜 살아야 하지.")[ [[잘 모르겠어. 왜 살아야 하는지.->증명7]]]//당신이 결코 육성으로 만들지 않는 질문을 텅 빈 눈에서 읽으면서 조던은 할 수만 있다면 과거의 자신을 가능한 한 힘껏 후려팰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딸을,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남자에게 그간의 묵묵한 위로에 대한 답례로 돌려주기엔 최악의 조언이었다. 눈 앞에 있는데도 닿지 않는 것처럼 먼 시선을 본다. 그는 말마따나 눈을 뜬 채로도 감고 있다. 두 발을 땅에 디디고 있어도 디딘 것 같지 않은, 현실에서의 붕 뜬 유리감만이 그를 (link-reveal:"고통에서 분리해 줄 테니까.")[ 하지만 동시에 자신 역시 당신에게 (link-reveal:"닿을 수가 없다.")[ 붙잡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에게 닿을 방법이 없다는 게 어떤 공포인지 제대로 처해보기 전에는 전혀 몰랐다. 힘껏 끌어안고 때때로 조심스럽게 입맞추고, 마른 몸을 붙잡아 살갗끼리 맞부딪혀 빈틈 없이 맞물릴 때 찰나는 꼭 연결된 것 같은 착각이 들다가도 먼 시선이 정처 없는 허공을 향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까봐 쉽게 두려워졌다. 당신은 자꾸 가벼워지면서 부유하는데 내가 당신을 땅 위에 붙들어 놓을만큼 충분한 중력을 가졌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증명8]]]]//[[더 살아야 하는 이유를 너에게서 찾아도 될까.->증명9]]//당신은 그렇게 묻는데, 나는 증명할 게 없는 가난한 빈손이다. 한심한 실패자고 무책임한 방기자다. 기꺼이 당신의 닻이 되겠다고 장담할 만큼 내세울 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쉽게 변하고 배신한 주제에 영원과 신뢰를 약속하는 건 우습기만 하고, 레베카의 빈자리를 자신이 채울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조차 어쩌면 하나의 모욕같다. 그러니까 겨우 당신의 내일 하루를 탐내고, 내년을 간신히 기약하는 것이다. 바라는 건 그것보다 훨씬 더 (link-reveal:"음습하고 집요한 주제에…….")[ [[아, 그렇지. 적어도 내가 증명할 수 있는 게 하나는 있다.->증명10]]]//(link-reveal:"당신에게 줄 정답 같은 건 모르겠어요.")[ (link-reveal:"그냥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건 … 욕심 뿐인 것 같아.")[ [[레일리, 나는.->대답]]]]//